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칭기즈 칸 (문단 편집) === 인터넷발 칭기즈 칸 어록 === 참고로 "집안이 못났다고 실망하지 마라" 식으로 전개되는 칭기즈 칸이 했다는 말은 사실 '김종래' 라는 기자가 그의 일생을 토대로 칭기즈 칸이 글의 화자인 독자를 격려하는 내용의 가상의 글을 만들어서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이라는 책에 쓴 것인데 어느샌가 그 얘기가 쏙 빠지고 칭기즈 칸의 어록이 되어버렸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http://kor.theasian.asia/archives/97851|출처]] >“한국의 젊은이들아!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푸른 군대의 병사들아.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어려서는 이복형제와 자랐고, 커서는 사촌들의 시기에 두려워했다. 가난하다고 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시린내, 누린 나무마다 누린내가 났다. 나는 먹을 것을 위해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목숨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유일한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하지 마라. > >나는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는 곳, 꼬리 말고는 채찍도 없는 곳에서 자랐다.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데 동원한 몽골인은 병사로는 10만, 백성으로는 200만도 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누볐고, 그들을 위해 의리를 지켰다···. >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땡볕이 내리쬐는 더운 여름날 양털 속에 하루 종일 숨어 땀을 비오듯 흘렸다.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고, 가슴에 화살을 맞고 꼬리가 빠져라 도망친 적도 있었다. 나는 전쟁을 할 때는 언제나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극도의 절망감과 공포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아는가?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납치되었을 때도, 아내가 남의 자식을 낳았을 때도 눈을 감지 않았다. 숨죽이는 분노가 더 무섭다는 것을 적들은 알지 못했다. > >군사 100명으로 적군 10,000명을 마주칠 때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죽기 전에 먼저 죽는 사람을 경멸했다. 숨을 쉴 수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적은, 밖이 아닌 내 안에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깡그리 쓸어 버렸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 >----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 도입부.''' 작가는 자기가 쓴 글을 감동적인 역사 인물의 실제 어록이라면서 인쇄해 들고 온 지인을 보고 [[멘붕]]했다고 전해진다. 거기다 덤으로 나중에 [[불멸의 이순신]] 붐이 일어나면서 또 이걸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순신]] 어록' 이란 게 유포되어 이순신이 역적 가문 출신이었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아무튼 징기스칸 버전과 이순신 버전이 하도 퍼진 나머지 10년 전만 해도 어른들이 한마디씩 언급하거나 심지어 학교나 군대에서 관련 자료까지 준비해서 가르치기도 했다. 칭기즈칸이 홧김에 자신의 매를 죽이고 "분노로 한 일은 실패하기 마련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https://www.onday.or.kr/wp/?p=23505|일화]]가 국내 인터넷에 퍼져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https://blog.daum.net/biocode/5223|반박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